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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래도 해피엔드 - 박완서

2023-08-01

ⓒ Getty Images Bank
거실 유리창을 통해 43번 국도가 곧바로 바라다보인다.
이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부터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비와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지붕과 
편히 앉아 기다릴 수 있는 벤치까지 놓인 버스 정류장도 바로 코 앞이다.
그 길은 서울로 통하는 길이다.
그 길을 통과하는 시외버스는 
서울 근교의 크고 작은 시, 군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여서
번호는 각각이지만
서울에서의 반환점은 한결같이 2호선 강변역으로 돼 있다.

거기서 아무 버스라도 타면 곧장 순환선인 2호선과 연결될 수 있다.
그 생각만 하면 전원생활을 꿈꾼 무모함에 대한 불안감에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는 탁하고 악의적이었다.
승객은 예닐곱 사람밖에 안 됐지만
나는 오락에 굶주린 그들이 장난삼아 나를 갖고 놀려 한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버스는 열린 문으로 타는 게 아니라 앞문으로 타는 거예요.  
 앞문이요, 앞문.  알아들었어요?” 

나 귀먹지 않았다고 대들고 싶은 걸 참았다.
싱글대는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걸 느끼면서
버스 한 가운데서 손잡이를 잡은 채 무력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인터뷰. 전소영
모처럼 나들이를 나선 주인공은 냉정하고 메말라가는 현실에 크게 실망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택시 기사를 만나현실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느껴요. 사실 택시기사가 주인공에게 한 행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질보다 도덕을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손해를 조금 먼저 생각한 것 뿐이었죠. 하지만 이 배려가 주인공에게는 아주 큰 축복으로 여겨집니다. 물질 만능주의 세계 안에서 인간의 관계는 와해되고 사회적인 갈등은 심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래도 해피앤드가 되겠죠.


“사모님, 거스름돈도 안 받고 내리시면 어떡해요?” 

그제서야 만원짜리와 오천원짜리를 내고 그냥 내린 생각이 났다.

“그럼 이 돈 때문에 일부터 유턴까지 해 왔단 말예요?” 

“당근이죠” 

생기긴 소박하다기보다는 촌스럽게 생긴 젊은이였지만 
활짝 웃는 잇속이 희고 깨끗했다.
나는 그게 눈부셔 
뭐라고 고맙다는 인사와 칭찬의 말을 합쳐서 한다는 소리가 엉뚱하게도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네’ 였다.

“사모님, 어쩐지 멋쟁이다 싶었는데 외국에서 오래 사시다 오셨나봐요.  그렇죠?”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다만 활짝 웃어주었다.
그가 나에게 축복이 되었듯이 나도 그에게 축복이 되길 바라면서.



작가 박완서 (경기도, 1931.10.20.~2011.01.22.)
    - 등단 : 1970년 장편소설 [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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