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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어둠-강경애

2023-07-11

ⓒ Getty Images Bank
툭 솟은 광대뼈 위에 검은빛이 돌도록 움쑥 패인 눈이
슬그머니 외과실을 살피다가 환자가 없음을 알았던지 얼굴을 푹 숙이고,
지팡이에 힘을 주어 붕대한 다리를 철철 끌고 문안으로 들어선다.

의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의서를 보다가 흘끔 돌아보았으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른 머리를 돌리고 
검실검실한 긴 눈썹에 싫은 빛을 푸르르 깃들이고서 여전히 책에 열중한 체한다.
영실은 환자를 바라보자 얼굴이 해쓱해져 
오빠, 하고 부르려했으나 다시 보니 오빠는 아니었다.

내가 미쳤나, 소리를 쳤더라면 어쩔뻔 했어, 하고 다시 환자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저러한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 셈인가
그는 얼른 찜질수건을 가지고 환자 곁으로 가서 붕대에 손을 대었다.

참말 오빠는 사형을 당하였나? 거짓소리가 아닐까
손은 환부를 꾹 눌러 누런 고름을 뽑으면서 맘으로는 이리 분주하였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그는 부지중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록 오빠가 감옥에 있다 할지라도 모든 일을 이리 가르쳐 주었는데
이제부터는 누구의 지시를 받나! 어머님께는 뭐라고 하나,
그는 발버둥쳤다.
어젯밤에도 이리 와서 어머니는 차마 만나지 못하고 간 것이다.
어머니만 뵈오면 울음이 탁 나가서 
아무리 숨길래야 숨길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어머님을 만나지 않을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고 
내가 좀 대담해야지, 좀 더 침착해야지 하고 가만히 일어났다.


# 인터뷰. 전소영
작가는 1930년대 초반부터 약 10년 정도를 간도의 용정에서 보냈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작품을 썼는데요. 강경애가 이주해서 살아갈 당시에 간도는 항일투쟁의 중심 지역이었어요. 그래서 작가는 투쟁이 진행되는 과정과 그와 관련된 비극, 경험 들을 <어둠>이란 작품 안에 생생하게 그렸던 것입니다. 
이 작품의 오빠도 간도의 항일무장투쟁에 가담을 했다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보이죠. 물론 사회적인 상황 때문에 작중에는 그 사실이 암시적으로만 드러나고 있지만 오빠가 빈자를 동정을 하고, 생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웠다는 언급을 보면 오빠가 사회운동에 투신을 했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의사의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카락은 보기 싫게 흔들거리고
거무틱틱한 눈에 거만함이 숭글숭글 얽히었다.
전날에 고상해 보이던 그의 인격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야비함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저런 사나이에게 귀한 처녀를 빼앗기었나, 자신의 이리석음이 기막히게 분하여진다.
믿던 사나이도 변하였고, 행여나 나오면, 나오게 되면, 하고 주야로 기다리던 오빠마저
영원히 가버렸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오늘쯤은 어디서 이 소식을 듣고
나에게 쫓아오다가 길에서라도 졸도를 하지 않았는지 하는 불안이 커갔다.
영식아, 영식아! 오빠를 부르는 어머니의 음성이 금방 들리는 듯하다.



작가 강경애(황해도 송화, 1906.04.20.~1943.04.26.)
    - 등단 : 1931년 소설 [어머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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