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나씨, 즉 나는
평소 남 말도 많이 듣고 남 말도 많이 하는 편이다.
소설가라는 게 워낙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종족이라
각별히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오늘 아침 누구의 목소린지 귀를 간질이다 못해
귓구멍 깊이 파고드는 느낌에 잠을 깼다.
그 누군지가 마지막으로 귓속 깊이 찔러 넣은 말은 "웃기고 있네" 였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휠체어의 발 받침대가 누군가의 발목을 쳤나 보다.
내가 얼른 앞으로 가서 그 사람의 등에 한 손을 올리고
다리께로 손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많이 다치셨습니까?
그 사람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M이었다.
우리는 서로 어? 어? 여기 웬일? 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 안녕하세요?”
주인님을 본 M이 인사를 했다.
“음, 자네였군, 잘 지내나?
일은 잘 되어가고? 장편 쓴다고 했지?”
“예,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M)
M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다시피 했다.
내게는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M과 나는 서로 눈을 맞추지 않았다.
# 인터뷰. 전소영
작품의 결론이 참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창작 행위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이 세상에서 기댈 곳이 없다면 보상도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는 와중에 과연 창작을 이어가야만 할까, 이런 고민을 작가가 독자들에게 공유를 해주는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다행히 작중 나씨는 M과는 다른 문학관을 가지고 있죠. 나씨 만큼은 적어도 위선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작품을 계속 어어 가지 않을까 또 방현희 작가도 그런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해 온 게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주인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
늙은 몸을 내 몸에 기대게 한 뒤
웃을 벗기고 새 옷을 갈아입힐 것이다.
죽은 권력이든, 늙은 권력이든 내게 돈을 주는 한
나는 그의 시중을 들어야겠지.
M은 집으로 돌아가 순교자적인 글을 쓰겠지.
나는 집으로 돌아가 푸른 어둠 속에서 조롱이 가득한 글을 쓰겠지.
그리고 모니터를 끄고 이부자리에 들어
누구를 통해서 내 앞에서 닫힌 문을 두드려봐야 하나, 생각하다가 잠이 들겠지.
작가 방현희 (전라북도 익산, 1964~ )
- 등단 : 2001년 단편소설 [새홀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