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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 박지영

2023-05-16

ⓒ Getty Images Bank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살기 시작하면서 동물 관련 방송들을 유심히 보게 됐다.

뭐랄까, 치매에 관한 다큐멘터리보다 훨씬 참고할 만 하달까.

다른 형제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강진경이 안다면 아버지를 반려동물로 생각하는 거냐고 어이없어 할지도 모르니까.


그럴 리가.

강선동은 강만석을 절대 개나 고양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귀여운 구석도 없고 똑똑한 녀석들처럼 똥 오줌도 못 가리는데 그럴 리가.

밥솥이라면 모를까.


전기밥솥의 평균수명은 5년에서 7년.

강만석의 집에 있는 밥솥은 10인용이고, 7년이 되었다.

바꿀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강만석이 처음 치매 진단을 받은 것도 7년 전이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어쩌면 너무 괜찮은 척 한 게 문제였다.

강만석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지 사람들이 알아야했다.

강만석에게 변비약 두 통을 섞은 죽을 먹였다.


그 날 밤  강만석이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강만석이 바지를 반쯤 내린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방문을 열고 나오며

마치 선물을 건네듯 조심스레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위에 있는 건 똥이었다.


강선동은 말없이 강만석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어 내보냈다.


채팅장은 욕설로 뒤덮였다.

곧이어 노란 경고장이 떴고, 라이브방송은 강제로 종료됐다.



# 인터뷰. 전소영

기본적으로 밥솥은 거기 녹음된 목소리가 아무리 다정하다고 해도 감정도 없고 인격도 없는 그냥 사물입니다. 말하자면 강선동은 자기 부친은 인간이 아니라 사물 대하듯 했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그에게 아버지는 생활비를 버는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죠. 이 작품은 이러한 강성동의 모습을 통해서 현대사회의 핵심적인 화두중 하나인 고령화 그리고 치매, 돌봄의 문제를 아주 날카롭게 환기하고 있습니다.



면회를 갔다가 병원 입구에서 돌아서서 집으로 오는 과정까지 찍은 영상을 

강선동은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3개월만이었다.

납작 엎드려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착한 어른들의 다정과 배려가 필요한 소외된 약자임을 드러내야 한다.

다시 유튜버가 되어 좋아요를 받고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나쁜 어른의 기억은 지우고 착한 아이의 기억만 남겨두는 것,

강선동의 치매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착한 아이 강선동은 자신을 연민하고 사랑하려고 애쓰는 마음을,

더 많은 포도알을 수확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작가 박지영 (서울, 1974년~)

    - 등단 : 2010년 단편소설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 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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