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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전영택

2023-01-24

ⓒ Getty Images Bank

이날 아침에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소 외양간을 깨끗이 치워주고

여물을 정성껏 끓여 먹였다.

새끼 뱄던 암소가 여물을 먹고 나더니

금방 새끼를 낳아놓았다.

홍주사는 너무 기뻐서 손수 송아지를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어미 소 등에 부대 자루를 뜯어서 덮어주었다.


“정말 이렇게 큰 송아지는 처음 보았어요. 수컷이지요?

여보, 용덕이 아버지.

이 송아지는 용덕이 소라 하고, 이담에 암컷 낳거든 내 몫으로 주어요, 응”


- 방송 내용 중 일부



내 건너 이북 동네 놈들이 우리 소를 잡아먹었대요.

 그 놈들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홍주사도 눈시울이 벌게지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서 있다.


“소경 제 닭 잡아먹기로 제 동포의 것을 잡아먹고 마음이 편할까?” 


홍주사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마누라 생각, 지나간 십 년 동안의 일, 동네 일, 나랏일을 생각하면서

이남이고 이북이고 분간할 수 없이 안개 속에 잠긴 동네들을 바라보았다.


생각을 해서 앞길을 정하려고 해보았으나

눈물이 나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 인터뷰. 방민호

이 작중의 배경 마을은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직후 3.8선이 바로 윗쪽으로 지나가는 것으로 묘사 되어있습니다. 소가 어떻게 하다가 저쪽 38선 이북으로 건너갈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뻔히 남쪽에서 온 소가 분명한데 먹을 게 없으니까 잡아먹고 마는 거에요.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남쪽 홍주사 마을에 있는 청년들도 윗쪽 마을의 소를 잡아서 먹겠다고 합니다. 정말 끔찍한 새로운 혼돈의 시대가 닥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동포끼리 그래선 안 됩니다. 돌려보내시오.

 정 소를 잡아먹고 싶거든 우리 소를 잡아 먹어요” 


이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창수는 바삐 동네로 내려갔다.


자기네 소를 끌어다 주려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 외양간을 본즉,

외양간이 텅텅 비었다.


밖에도 집 근방 아무 데도 소는 없다.

방에 들어가 본즉 서투른 글씨로 

이런 말이 씌어 있는 종잇조각이 방바닥에 구르고 있다.  


‘나는 내 소를 가지고 갑니다.

다시는 기다리지 마시오’ 


창수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멍하니 방 한가운데 서 있다가

궤짝에서 돈을 꺼내서 소 한 마리 값만큼 장손에게 갖다주고,

자기도 얼마 가지고는 

장손이 어머니 보고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다시는 오여울 동네에서 아무도 홍창수를 본 사람이 없다.




작가 전영택 (평안남도 평양, 1894년.1.18~1968.1.16.)

    - 등단 : 1919년 단편 [혜선(惠善)의 사(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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