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50환씩 성금을 모으자는 야학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을 때
만금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작년 여름, 물난리로 아버지와 누이, 집까지 다 잃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남은 자신보다
그 아이들의 처지가 더 딱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만금은 한 달에 백 환씩 하는 학교 수업료가 두 달이나 밀렸지만
전쟁 고아들을 위해 꼭 50환을 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만금이의 얘기를 듣고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쓸어보니 오리알은 한 알이 아니요, 세 알이나 대글거렸다.
만금은 그것을 학교 앞 거리 상점에 가져다 팔았으면
50환은 넉넉히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죄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것은 죄다’
만금은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으나
뒤미처 그의 눈앞에는 헐벗고 굶주려 우는 전쟁 고아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살려 달라는 듯이 자기의 어깨에도 그들이 무수히 달려와서
매어달리는 것 같은 환상이 눈앞에 어릴 때,
그의 손은 어느 새 벌써 오리알에 가 닿아서 떨리고 있었다.
# 인터뷰. 전소영
윤초시의 집에 갔다가 오리 알을 줍고, 그것을 팔아서 성금을 내기까지 내면에서는 많은 고민과 갈등이 생겨났는데요.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결국 오리알 판돈을 전부 다 성금으로 내버려요.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는 남을 돕는 일조차도 녹록치 않았던 시대의 비정함이 인물의 갈등과 또 행동 방식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작가는 결말을 통해서 당대가 굉장히 모순적인 시대였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만금이는 어른들의 계략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했고 그것을 가지고 타인을 돕고자 했어요. 이타적인 사람이 오히려 벌을 받는 당대 사회의 문제가 만금이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선생은 돈 60환을 테이블 서랍에서 꺼내어
책상 위에 다 휙 밀어던졌다.
“다시 그런 못된 짓을 어디 또 해 봐라.
이 자리로 당장 그 오리알을 물러다가 윤초시댁에 가져다 드려”
선생의 손 끝에서 힘있게 밀리는 돈이
눈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
만금은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들먹이는 어깨 따라 가다듬었던 눈물이 또 다시 주르르 흘러내리며
지전 위에 뚝뚝 떨어졌다.
“냉큼 집어 들고 나가지 못해!”
만금은 말없이 떨리는 손으로 돈을 움켜 들었다.
어제 저녁 상점에서 오리알과 바꿔 들었을 때의
그 돈과의 감정의 교차를 손 안에 느낄 때
만금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걸음 좇아
마룻바닥 위에 점점이 떨어지는 말간 눈물방울을
만금은 밟고도 또 떨어뜨리고
떨어뜨리고는 또 밟으며 무거운 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작가 계용묵 (평안북도 선천, 1904. 9.8.~1961. 8. 9.)
- 등단 : 1925년 단편소설 [상환]